2010년 8월 29일 일요일



남대문 시장 약도 입니다.
참고 하세용~~~

(역사) 남대문의 변천사

원래의 이름은 숭례문,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부른다.
서울에 남아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해 태조 7년(1398)에 완공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63년 해체 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 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의 2층 건물이다. 현판은 ''지봉유설''의 기록에 의하면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고 한다.
처음 지은 시기도 정확히 알 수 있으며 견고한 수법과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조건 전기 건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1880

남대문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다.
정문 좌우에는 초가지붕이 길게 늘어져 있으며 행인의 차림새는 흰 옷 일색이다.


1880

1890

남대문 안, 멀리 남대문이 보인다.


1890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져 있던 초가집들이 기와집으로 개조되었다.
알몸으로 달리는 아이가 이채롭다.
아이의 행색과 부채로 햇볕을 가리며 걷는 행인의 모습으로 봐선 여름 한낮이었던 것 같다.
그 뒤에 검정 장옷을 뒤집어 쓴 여인이 더위를 견디면서 뒤따르고 있다.


1895

길 양편에 서 있는 시장은 1608년(선조 41년) 대동미(大同米)·포(布)·錢)의 출납을 담당하던 선혜청이 지금의 남창동에 설치돼 지방 특산물 등을 매매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한다.


1899

오른쪽의 전차 선로는 1899년 1월에 남대문과 용산 간에 부설된 것이다.
프랑스 외방 선교회 신부들이 남대문 앞을 산책하고 있다.


남대문 정문 안으로 뻗어있는 철로를 타고 전차가 움직이고 있다.


1900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다.
왼쪽 산은 만리고개이다.


1900

1900

문 앞에는 아침마다 나무장사들이 운집하여 이 거리는 소란하고 상품종류도 다양했다.
문 부근에는 칠패시장이 열려 남대문시장의 효시가 되었다.


1904 호주의 사진작가 George Rose

1904 호주의 사진작가 George Rose

1904 호주의 사진작가 George Rose

1906

남대문 전차 궤도 부설 공사를 위해 자재를 운반하고 있다.


1907

구한말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1907년 일본 황태자의 조선 방문 때 남대문 앞에 세운 대형 아치.
사진에는 일진회의 이름이 담긴 대형 아치 위에 태극기와 일장기가 교차해 있으나 아치의 중간에 ''받들어 맞이한다''는 의미의 ''봉영(奉迎)''이라는 문구와 함께 중앙에 일본왕실을 상징하는 사꾸라 문양이 새겨져 있다.


1907

양쪽 성벽은 1899년(광무 3년) 전차가 개통되면서 일분 훼손된 뒤 1907년(융희 1년) 또다시 크게 헐렸다.
당시 방한했던 일본 왕세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을 지나갈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로부터 남대문은 양쪽에 날개쳐럼 성벽을 지녔던 당당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외로운 섬처럼 고립됐다.



일제시대

1910

1940



한국전쟁

1950

1951

출처: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사진자료실 | 소설가 박도 | 눈빛출판사의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한국전쟁 중 포격에 의해 석축과 지붕이 훼손되었다.


1952

출처: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사진자료실 | 소설가 박도 | 눈빛출판사의 ''지울 수 없는 이미지3''

1952

제3공화국

1961.7

1963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려고 1961~63년까지 대규모 해체와 복원 공사를 한 직후의 모습이다.


1965.3

1970년대

참여정부



< 자료, 사진 출처 : http://www.namdaemunmarket.co.kr/ >

(안내) 상가 지도 전화번호 안내

상가 지도 보기
여성의류, 남성의류, 아동의류를 비롯, 각종 섬유제품과 일용잡화, 주방용품, 민속공예와 토산품 및 장신구, 수입상품, 식품잡화, 농수산물 등 품목별로 상가를 안내합니다.




(출처:남대문 종합 쇼핑몰 sn25.com)
번호상 가 명전 화취급 품목영업 시간
1대도레이디777-2472숙녀복, T셔츠, 홈웨어24:00~17:00
대도퀸숙녀복755-2472숙녀복, T셔츠, 홈웨어24:00~17:00
2쉬크타운773-3021숙녀복12:00~10:00
장띠모아755-0492숙녀복, 브라우스, T셔츠24:00~11:00
윙스타운776-3696숙녀복, 브라우스, T셔츠24:00~15:00
3올스타프라자756-2987숙녀복07:00~19:00
4남대문1번가753-9083숙녀복,T셔츠, 브라우스23:00~13:00
케네디상가753-6762숙녀복, 브라우스, 니트23:00~17:30
한영상가754-5084숙녀복, 브리우스, 니트06:00~17:00
5청자상가753-1620숙녀복, 츄리닝00:00~17:00
6영창악세사리755-8537악세사리04:00~16:00
세계로안경타운755-8228안경, 돋보기, 콘텍트등06:00~22:00
7연세악세사리상가775-0555악세사리05:00~16:00
8국제수입상가754-2255수입용품23:00~14:00
9장안악세사리753-5600악세사리04:00~16:00
10유성상가753-2931악세사리, 벨트, 지갑05:00~17:00
남도수입상가755-7962식품,잡화, 주방용품23:00~16:00
11대도상가753-4897남성복, T셔츠, 수입용품24:00~17:00
맨코스상가752-8598남성복, T셔츠, 바지24:00~17:00
남문악세사리778-8932악세사리06:00~17:00
렝땅악세사리755-4042악세사리05:00~17:00
원랭땅악세사리754-0980악세사리06:00~17:00
E동지하수입상가752-5667수입용품02:00~17:00
대도꽃상가E동3층755-9513조화, 인테리어용품, 도자기04:00~17:00
대도꽃상가3층(생화)755-9513생화23:00~16:00
대도꽃상사4층755-0797분재, 꽃바구니, 근조화환09:00~18:00
12대도종합지하수입319-3686수입용품06:30~18:00
대도종합2층752-2985악세사리, 공예품, 완구24:00~17:00
대도종합1층753-3845일용잡화, 악세사리, 벨트24:00~17:00
남대문수산물상가752-9723생선, 어패류04:00~18:00
대도종합3층그릇상가752-2958수저, 그릇, 주방용품, 칠기,
스텐, 플라스틱
08:30~18:30
13C동지하수입상가753-8964수입용품05:00~19:00
C동중앙상가1층779-2639숙녀복, 메리야스, 부라우스06:00~20:00
C동중앙상가2층779-3129혼수용품, 공예품06:00~19:00
C동중앙상가3층776-9311그릇, 주방용품, 칠기08:30~18:30
14대도아케이트757-7988숙녀복, 브리우스, 잠옷24:00~17:00
크레용아동복753-6967아동복23:30~10:00
포키아동복755-2154아동복23:00~16:00
15마마아동복상가752-2773아동복23:00~16:00
부르뎅아동복755-5737아동복23:00~16:00
대도마케트752-9691숙녀복, 브라우스, 스카프24:00~17:00
16대도은남상가757-5085숙녀복, 부라우스, 바지06:00~19:00
17남대문상가754-3312안경, 시계,잡화,카메라06:00~18:00
18본동상가752-1888식품, 채소, 생선, 건어물05:00~19:00
19본동상가754-0980식품, 채소, 생선, 건어물05:00~19:00
20라뽐에스떼756-8870숙녀복23:00~17:00
21우주악세사리778-8469귀금속, 보석09:00~18:00

(역사) 남대문시장의 역사


서울 숭례문 일대(남창동)에 위치한 국내 최고, 최대의 재래시장 남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은 태종 14년인 1414년 남대문 언덕의 도로 양편에 행랑을 건설하면서 정부임대전으로 개시 되었는데, 1608년(선조 41년) 대동미 포,전의 출납을 맡아보기 위해 선혜정이 지금의 남창동에 설치됨에 따라 지방의 특산물 등을 매매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저자거리가 형성된 데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지금의 남대문로 1가 연변만이 상업지역의 무대 였으며,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상품화폐 경제가 진전되던 조선후기에 시전이 들어서면서 부터이고, 조선말기 무렵 서울 장안의 중소 유통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일제시대 당시 친일 이완용 내각의 내부대신이었던 송병준이 조선농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당시의 거래 물품은 미곡, 잡화, 과실 등이었고, 곡물류가 주상품이었다.
남대문시장에 점포를 내고 있던 상인은 미곡상 36개, 어물상 22개, 과물상 33개, 잡화상 19개, 기타 30개 등으로 총 150개 점포였다.
1922년 일본인 소유의 '중앙물산주식회사'로 경영권이 넘어갔으며, 중앙물산주식회사는 공인 자본금 90만원, 불입 자본금 22만 5,200원이었다. 1936년 3월 남대문시장이라는 명칭도 말소하고 중앙물산시장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

 

 

일본인들은 한국인 점포를 염천교쪽으로 쫗아버려 몇몇 한국인 점포만 존재하다가 8.15 광복을 맞게 되었다.
8.15해방이후 남대문상인연합회가 형성 되었으나,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폐허로 변한 남대문시장에 월남한 피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군수품과 미제 물건등을 음성적으로 거래하면서 부터 시장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54년 2월 3일 남대문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시청으로부터 시장개설권 허가를 받아 경영하였으나, 1957년 재정난으로 해산 다시 남대문상인연합번영회가 시장관리를 시작하였다.
1958년 대지 약 1만 2000평, 건평 약 2,000평 규모의 건물이 세워졌다.
1963년 건물주, 지주, 상인들이 공동출자한 남대문시장주식회사가 다시 발족 되었고, 1964년에 '남대문주식회사'로 법인제도가 구성되면서 지금까지 남대문시장을 관리, 운영을 하면서, 이후 중앙관리조직의 전통이 남게 되었다.

 


 

△ 1890년대로 추정되는 숭례문의 옛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 성벽이 헐리기 전 대문을 통해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조선고적도보> 11권에 실림)과, 차량 물결 속에 섬처럼 우뚝 선 모양새가 또렷하게 대비된다.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하루종일 줄서 먹는 왕만두 맛집_가메골

남대문 맛집 하루종일 줄서 먹는 왕만두 맛집_가메골
남대문 시장의 명물, 왕만두 칼국수 맛집 가메골이예요
일부러 찾아간 게 아니라
(또) 남대문 시장서 길을 잃어 헤매이다 우연히 맛난 맛집이예요 ㅋ


#가메골 위치
: 회현역 5번 출구 > 바로 보이는 시장골목으로 50m 도보 > 포장마차 가득한 골목 왼쪽편
  (*간판은 잘 안보이지만 항상 사람들이 줄 서 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메뉴
 : 매운 만두, 그냥 만두, 칼국수
 #가격
 : 2개 1000원 ~ 
[출처] 남대문 맛집) 항상 줄서서 먹는 왕만두 칼국수_가메골|작성자 식탐인아